고전15:1-11 "너희에게 전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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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사상
복음은 예수님이 약속된 부활의 소망이 되신다는 뉴스입니다.
*서론 (고린도에 대하여)/ 사진
이 도시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센터였습니다. 상업이 번창했고 무역이 활발했습니다. 이 도시는 좁은 해협에 위치했으면서도 동과 서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치품들이 이 도시를 거쳐 갔고 따라서 세상 모든 허영심에 들뜬 상인들을 모으는 요충 도시였습니다.
아라비아의 향유, 베니게의 대추야자 열매, 리비아의 상아, 바벨론의 주단, 길리기아의 산양털, 루가오니아의 모직물, 부르기아를 통한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올림픽에 버금가는 스포츠 축제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거대한 부가 이 도시에 집중되었고 인구는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죄와 부도덕 또한 넘쳐났습니다. 술과 도박, 포르노, 동성애, 마약이 넘쳐났고, 이 도시의 언덕에선 사원을 빙자하여 세워진 공창에서 공개적인 성매매가 공공연히 행해졌습니다. 그런 이 도시의 시민들을 지상의 천국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시민들은 이 천국 같은 도시에서 장수를 누리기 위해 건강에 좋은 모든 약품들을 세상 도처에서 수입해 고가로 거래했습니다.
마치 미국의 뉴욕이나 중국의 상해, 일본의 동경이나 대한민국의 서울을 연상할 만한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바로 1세기 그리스에 위치한 고린도였습니다. 이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을 주목한 이웃들은 ‘고린티아 제스타이'=고린도인 처럼 행동한다라는 말을 퍼트렸습니다. “방탕을 일삼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도시에 바울이라는 사람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고 이 복음은 이 도시를 흔드는 거대한 충격파로 다가왔습니다. 바울은 그의 일생의 선교 역사에서 에베소 다음으로 긴 1년 반을 이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이 향락의 도시 고린도에 전해진 복음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은 예수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메시지 입니다.
바울이 살았던 1세기나 지금 우리가 사는 지금이나 사람들이 죄에 빠지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죄가 가져다주는 쾌락 때문입니다. 성경도 죄가 동반하는 쾌락을 인정합니다.
히브리서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여기 죄악의 낙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단서를 주목해야 합니다. ‘잠시'라는 단어입니다. 그 잠시의 쾌락이 지나가면 길고 어두운 죄책감의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런 죄와 죄책감의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 그 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로 이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해 이 도시에 와서 복음을 전한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본문 1-2절 함께 읽어 볼까요?
고린도전서 15: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복음은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철저하게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이 죄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다시 말씀을 보십시오. 3절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린도에서 얼마 멀지 않은 아테네는 오랫동안 철학의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고린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만 문제는 어떤 철학도 이 죄 문제의 해답을 내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에 팽배했던 쾌락주의자들은 죄를 생각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했지만 문제는 죄 이후에 동반하는 죄책감으로 죄의 쾌락은 쓰디쓴 고통의 열매를 가져다줄 뿐이었습니다. 스토아(금욕주의) 철학자들은 되도록 죄를 짓지 말고 근신하라고 말하지만 그런 근신이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미 범해 버린 죄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그대로 속죄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시사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 죽으심, 이것이 우리의 복음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 죽으심,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피흘림을 통하여 사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고 있는데 그는 에베소에 전한 복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예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할렐루야! 예수의 피로 말미암하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이 메시지가 고린도에 전해진 복음이었고, 지금도 우리가 다시 들어야 할 복음입니다.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피로 구원 받았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만이 우리를 사하는 줄 믿습니다. 신천지 이만희를 통하여, JMS 정명석을 통하여, 통일교 문선명을 통하여...사람을 통하여 구원은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계속해서 말씀으로 들어가 봅시다.
쾌락에 빠져 있던 고린도인들도 명백하게 부정할 수 없는 인생의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 때문에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더더욱 쾌락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 그것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확률은 100퍼센트입니다. 모두가 죽어야 합니다.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듣고 싶은 대답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저 없이 손을 든 한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먼저 죽어야 합니다"
사실 입니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죽음 이후에 몸의 부활이 있고 이 부활의 몸으로 우리는 영생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확실한 증거가 바로 예수의 부활이라고 증언합니다. 그가 사셨기에 우리도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의 부활로 우리의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본문 4절의 증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바울은 5절 이후에서 이 부활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고린도전서 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예수님의 수제자인 게바,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5백여 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그 분을 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만삭되지 못해 태어난 부족한 사람(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바울을 만나 그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동일하게 부활하신 그 분이 여러분과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그 분을 믿고 그 분을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증거인 것이지요.
부활의 증거는 바로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의 승리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예수로 말미암은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고린도 성도들이 세속의 유혹과 염려, 시련의 한복판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권합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2월 3일 새생명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작년해 했으니 이 만큼? 코로나로 인해 아직 어려워...라는 우리 안에 선입견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피를 통하여 구원받은 내 형제들아, 부활의 주를 믿니?
그렇다면...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거야! 큰 상급으로 준비되어 있어!라는 것이지요.
정리
한 이야기를 하고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미국의 한 커플 이야기인데요.
빌이란 형제는 음악을 좋아하였고, 글로리아라는 여성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둘이 결혼하여 환상의 커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커플의 삶에도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남편 빌에게 단핵구증이라는 전염병이 찾아왔고 무력감에 모든 일을 포기하게 이르렀습니다. 설상가상 이들 가족에게 혹독한 관계의 어려움도 찾아왔습니다.
이 어려움 가운데 말씀을 묵상하던 글로리아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살아 계신 주님의 평안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사를 쓰고 남편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보, 곡을 만들어 봐요"...이 순간에 탄생한 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 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171장)”
원어를 보면
“그가 살아 계시기에 모든 두려움 사라지고
그가 미래를 붙들고 계심을 알기에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고린도에 전해진 부활의 복음, 부활의 메시지 입니다"
이 복음의 메시지가 저와 여러분에게 확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와 더불어 작정한 태신자에게, 믿지 않는 영혼에게 전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